• 2010. 5. 19.

    by. 별머루

      
      

    신기전~!

      

    신기전은 15세기 최고 첨단과학 무기였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조선 초기 압록강과 두만강 이남의 여진족으로부터 우리 땅을 되찾기 위한 전쟁에서 새로운 화약 무기인 ‘신기전’이 큰 역할을 했다고 기록돼 있다. 불과 35년 전만 해도 신기전은 단지 신호용 화약 무기였다고 알려져 왔지만, 지금은 신기전이 15세기, 세계 최고 수준의 로켓 무기였다는 데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은 없다. 예나 지금이나 신무기 개발엔 언제나 첨단 과학 기술이 필요하다. 신기전을 통해 우리나라의 전통 로켓과학을 들여다보자.

     

     

    세계최초의 로켓은 금나라의 비화창

    세계최초의 로켓 무기는 중국 금나라가 몽골군에 대항하기 위해 만든 비화창(飛火槍)이란 화약 무기다(1232년). 비화창은 길이 40cm의 종이통에 흑색화약을 넣은 것으로 길이 2.5m의 화살대 앞에 묶어 쐈다. 비화창은 적진으로 날아가 떨어지고 나서 불을 내 뿜어 적을 혼란에 빠뜨리는 무기였다. 중국에서는 17세기 이후 이와 같은 로켓추진 화기를 불화살이라는 뜻의 화전(火箭)으로 불렀다.

     

    1621년 중국에서 편찬된 [무비지(武備志)]란 무기 책에는 16종류의 로켓 화기가 나온다. 화살대의 길이는 30cm에서 1.2m 정도다. 발사방식도 한 번에 1발씩 발사하는 것에서 한 번에 100발씩 쏘는 것까지 다양하다. 그러나 무비지의 기록은 그 내용이 자세하지 않아 복원이 어렵다.

     

    1621년 중국에서 편찬된 [무비지]에 나오는 로켓 화기(왼쪽)
    1474년 편찬된 병기도설의 신기전 설계도 (오른쪽)

     

     

     

    우리나라 최초의 로켓은 고려 최무선 장군이 만든 주화

    우리나라 최초 로켓은 최무선 장군이 1377년 화통도감에서 만든 ‘주화(走火)’다. ‘달리는 불’이란 뜻이 있는 주화는 최무선이 중국의 화약 무기를 본떠 만든 18종의 화약 무기 중 하나다. 주화는 화살대 앞부분에 약통을 붙였다. 약통은 종이를 말아서 만든 통에 화약을 넣은 것이다. 주화의 크기에 대한 기록은 없지만, 세종 때 소신기전으로 발전한 점으로 미뤄 소신기전과 같은 크기인 길이 110cm에, 화살의 앞부분에 로켓추진기관인 약통이 붙어 있는 형태로 추측해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주화를 만들기 전에 아라비아에서 로켓 추진식 화기를 만들었고 이탈리아에서도 우리와 비슷한 시기에 로켓 추진식 화기를 만들었다. 따라서 주화는 세계에서 3~4번째로 개발된 로켓으로 추정된다. 주화는 압록강과 두만강 근처의 북방영토 회복에 발맞추어 조선 세종 때 획기적으로 발전하게 된다.

     

     

    조선의 로켓인 신기전은 소∙중∙대신기전과 산화신기전 모두 4가지

    세종 29년(1447년)에는 소∙중∙대주화가 개발돼 사용된다. 이어 세종 30년(1448년)에는 신기전(神機箭)으로 이름이 바뀌어 사용된다. 신기전의 상세한 자료는 1474년 편찬된 [국조오례서례(國朝五禮序例)]의 [병기도설(兵器圖說)]에 남아 있다. [병기도설]에는 소∙중∙대신기전 이외에 산화신기전(散火神機箭)이 추가돼 신기전의 종류는 모두 4가지로 구분된다.

     

    소신기전은 길이 110cm의 화살 앞부분에 약통이 붙어 있는 크기이다. 약통의 크기는 길이 15cm, 바깥쪽 지름이 2cm이다. 하나의 소신기전 약통엔 20g의 화약이 채워져 있다. 최근의 복원 발사시험으로 미뤄볼 때, 지면과 60도로 발사하면 평균 150m의 비행성능을 가진 것으로 평가된다. 소신기전의 쇠 촉에는 독약을 묻혀서 사용하였다.

     

    소신기전(위), 중신기전(아래)의 구조, (단위 mm)
    ① 화살대 ② 종이약통 ③ 화살촉 ④ 깃털 ⑤ 소발화통(폭탄)

     

     

    중신기전은 약통의 앞부분에 ‘소발화(小發火)’라는 작은 폭탄이 달렸다. 화살대는 길이 145cm, 약통 길이 20cm, 반지름이 3cm이다. 목표지점으로 날아가 약통 앞부분에 달린 소발화가 폭발하도록 설계됐다. 소발화는 종이를 원통형으로 만들고 화약을 넣고 양끝을 막아 사용하는 폭탄이다. 화약에는 쇳가루가 들어 있어 폭발할 때 파편 역할을 한다. 중신기전은 발사 각도를 조절할 수 있는 발사대나 화살통에서 1발씩 발사된다. 1451년 문종(文宗)때 화차(火車)가 개발되면서 한 번에 100발씩 쏠 수 있도록 개량됐다. 복원된 중신기전 발사실험에서 50g의 흑색화약을 넣고 60도 발사했을 때 250m를 비행했다. 중신기전은 소신기전보다 멀리 날아가고 작은 폭탄까지 달려 전투에서 무척 효과적인 화약 무기였다.

     

    대신기전의 구조 ① 대신기전 발화통(폭탄) ② 약통(로켓엔진) ③ 안정막대(대나무) ④ 깃털,
    산화신기전은 대신기전발화통 대신 지화통(2단 로켓)에 소발화통을 묶어 사용했다. (단위 mm)

     

     

    대신기전은 길이 5.3m의 큰 대나무 앞부분에 길이 70cm, 지름 10cm의 대형 약통이 달렸다. 종이로 된 약통에는 최대 3kg의 흑색화약을 채운다. 약통의 앞부분에는 길이 23cm, 지름 7.5cm의 대신기전 발화통이란 대형 폭탄이 달렸다. 이 폭탄은 목표물 도착 전후에 점화선에 의해 자동으로 폭발하도록 설계돼 있다. 사정거리는 600~700m 정도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대신기전은 압록강과 두만강 중류지방에 있던 4군 6진에서 여진족의 침략을 막기 위해 주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대신기전은 중신기전에 비해 60배나 많은 흑색화약을 써야 했고, 당시 가장 큰 대포였던 장군화통(將軍火筒)보다도 3배나 많은 화약을 사용하는 등 너무 많은 화약 소모량 등으로 인해 수명이 길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산화신기전은 ‘불을 흩뜨리는 신기전’으로 대신기전 약통의 윗부분을 비워놓고 그곳에 로켓의 일종인 지화통(地火筒)을 소형 폭탄인 소발화통과 묶어 사용하였다. 지화통은 종이를 말아서 만들었으며 길이는 13.5cm, 지름은 2.5cm로 중신기전과 소신기전약통의 중간 정도 크기다. 지화통은 땅에 묻어놓고 적이 접근하면 불을 붙여 하늘로 불을 뿜게 하여 적을 도망가게 하는 로켓 화기의 한 종류이다. 2009년 11월 27일 산화신기전 발사실험에서 비행 중 2단 로켓인 지화통에 불을 붙이는 데 성공하였다. 산화신기전은 발사하면 포물선을 그리며 500~600m를 비행해 내려가면서 지화통이 점화되고 지화통은 소발화통이라는 폭탄과 함께 빠르게 적진으로 날아가며 폭발한다.


    2009년 11월 27일, 자동차성능연구소에서 있었던 산화신기전의 발사모습

     

     

    세계에서 가장 큰 종이약통 로켓인 신기전의 구조와 특징

    신기전의 약통은 현대식 로켓의 ‘모터(motor)’에 해당한다. 종이를 말아서 만들었으며 연소가스의 분사속도를 높여주는 ‘노즐(nozzle)’이 없는 형태의 초기로켓이다. 16세기 유럽에서 만들어진 로켓은 종이약통의 끝부분에 끈을 조여서 감아 만든 목을 통해 노즐 역할을 하도록 했다. 화약을 약통에 채울 땐 화약이 타들어가는 면적을 넓히고 화약의 밀도를 높이기 위해 원뿔꼴의 첨철(尖鐵)위에 약통을 세운 뒤 화약을 조금씩 넣고 속이 빈 원통형 도구인 원철(圓鐵)을 이용해 망치로 다졌다.

     

    콘래드 하스가 개발한 2단 로켓 (1529년)


    신기전의 특징 중 하나는 중신기전이나 대신기전 또는 산화신기전의 앞부분에 발화통(지금의 폭탄)을 장치했다는 점이다. 로켓의 앞부분에 지금의 미사일처럼 폭탄을 장치해 발사했던 것은 신기전이 처음으로, 인류가 만든 로켓 무기 역사상 가장 오래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대신기전은 세계 최대의 종이약통 로켓으로 추정된다. 종이약통 로켓은 1232년의 세계 최초 로켓에서 1805년 영국에서 제작된 6-파운더(Pounder) 로켓이 개발되기까지 600년간 전 세계에서 사용되었다. 이 기간 동안 전 세계에서 쓰인 종이약통 로켓 무기들과 비교하면 대신기전은 세계에서 가장 큰 로켓 무기였다.

     

    또한 산화신기전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2단형 로켓이다. 산화신기전은 약통의 윗부분에 소발화통이 달린 지화통을 여러 개 설치하는데, 지화통이 바로 산화신기전의 2단 로켓에 해당한다. 지금까지 가장 오래된 2단 로켓으로 알려진 것은 루마니아의 콘래드 하스(Conrad Haas)가 1529년 설계한 로켓이지만, 산화신기전은 이보다 80년 앞서 개발됐다.

     

    [국조오례서례 병기도설]의 신기전 설명은 아주 자세하고 정밀하다. 각 부분의 치수를 0.3mm에 해당하는 리(釐)까지 아주 정밀하게 기록했다. 각 부분의 길이와 각 부분의 길이를 모두 합한 길이를 함께 기록해 현대식 기계설계기법과 같이 아주 자세히 기록했다. 이 같은 신기전에 관한 연구는 국제우주학회(IAF, IAA)에서 1993년과 2009년에 발표돼 세계적으로도 인정을 받았다.

     

     

    살상력과 적에게 큰 공포감까지 불러일으키는 신기전의 위력

    신기전의 위력은 어땠을까? [조선왕조실록]에는 적이 숨어 있을 만한 곳에 신기전을 쏘면 겁에 질려 스스로 항복했다는 기록이 있다. 당시 칼∙화살∙창, 그리고 총포가 전부이던 시절 굉음을 내고 불을 뿜으며 날아가 폭발하는 무기의 파괴력도 무섭지만, 적에게 큰 공포를 주었을 것이다. 더구나 화차를 통해 중신기전 100발을 한 번에 발사해 사거리 250m를 날아가서, 소형폭탄을 폭발시킬 수도 있었다. 또 500~700m를 10여 초 만에 날아가 여러 개의 소형폭탄이나 대형폭탄을 터뜨렸던 대신기전이나 산화신기전의 파괴력도 당시로써는 상상을 초월하는 ‘첨단’무기였다.

     

    대단한 위력을 가졌던 신기전은 세종 29년인 1447년 11월부터 문종 1년인 1451년 1월까지 3년 3개월 동안 4만여 발이 평안도와 함경도에서 제작돼 사용됐다. 화차도 1451년에만 700여 대가 만들어져 전국에 배치됐을 정도다.


    복원한 소∙중 신기전을 화차에서 발사하는 모습

     

     

    2009년 네 종류의 신기전을 원형으로 복원하여, 발사 성공해

    1975년 11월 역사학회에서 ‘주화와 신기전 연구 - 한국 초기(1377~1600) 로켓에 대하여’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해 우리나라에 로켓 무기인 주화와 신기전이 고려와 조선시대에 있었음이 처음 알려졌다. 그리고 1980년에는 행주산성 유물기념관에 세종 때의 각종 화포와 함께 신기전 및 화차를 복원해 전시했다. 1986년에는 헝가리에서 개최된 국제우주대회(IAF)에서 신기전을 국제학회에 처음 소개했다. 1993년에는 대전 엑스포에서 노즐이 있는 모습으로 소, 중, 대신기전을 복원하였고 화차를 이용해 소∙중신기전을 처음으로 공개 발사하였다. 2009년엔 소∙중∙대신기전과 산화신기전등 모든 종류의 신기전을 약통에 노즐이 없는 형태인 원형대로 복원하여 발사시험을 벌여 우리나라 전통 로켓의 위용을 완벽히 복원하는 데 성공했다.

     

    세계 최초의 2단 로켓인 산화신기전을 복원하여 발사하는 실험에 성공하였다.

     

     

     

    채연석 / 항공우주공학박사
    1988년부터 지금까지 한국항공우주연구원에서 로켓 추진기관연구개발에 참여해왔으며 6대 원장을 역임했다. 1994년 신기전 복원의 공로로 과학기술처장관상을 받았다. 2003년에는 국내 최초의 액체추진제 과학로켓 KSR-3를 성공적으로 개발한 공로로 과학기술훈장 웅비장과 국회과학기술대상을 받았다. 2002년 ‘닮고 싶고 되고 싶은 과학기술자’로 뽑혔다. http://blog.naver.com/gogospace

    한국항공우주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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